"사느냐, 죽느냐"를 넘어선 질문..다운증후군 배우들이 만든 새로운 '햄릿

 셰익스피어의 고전 ‘햄릿’은 시대를 초월해 끊임없이 재해석되며 관객과 만나왔다. 그러나 지난 23∼25일 서울 서대문구 모두예술극장에서 국내 초연된 페루 극단 ‘테아트로 라 플라사’의 ‘햄릿’은 그중에서도 독창적이고 특별한 작품으로 남는다. 이 연극은 다운증후군 배우 8명이 무대를 이끌며, 장애인의 실존과 사회적 차별을 정면으로 탐구한다.

 

연출가 첼라 데 페라리는 셰익스피어의 고전을 장애인 배우들을 위한 ‘새롭고 자유로운’ 형태로 재구성했다. 협력 연출을 맡은 조나탄 올리베로스는 “장애를 가진 이들이 사회에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할 때 마주하는 다양한 도전과 어려움을 탐구하고 싶었다”고 밝혔다. 작품의 상징적인 대사인 “사느냐, 죽느냐”는 장애인의 삶과 정체성을 묻는 질문으로 재해석되어 관객들에게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배우들은 객석 1열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며 무대에 올라 각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모두가 돌아가며 햄릿의 왕관을 쓰고, 극 중 캐릭터의 입을 빌려 자신의 삶과 욕망을 이야기한다.

 

첫 번째로 무대에 오른 배우 하이메 크루스는 작품의 시작을 알렸다. 그는 7년 전 테아트로 라 플라사에서 안내원으로 일하다 연출가 페라리와 만나 배우로 데뷔했다. 크루스는 자신이 연기를 가장 사랑한다고 말하며, 유엔에서 연설했던 경험과 연애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한때 비장애인 여성을 짝사랑해 실연의 아픔을 겪었지만, 현재는 다운증후군협회에서 만난 여성과 행복한 연애 중이다.

 


‘오필리아’를 연기한 세 명의 여배우들은 여성의 욕망과 현실을 이야기한다. 디아나는 아이 8명을 낳고 싶다고 말하며, 시메나는 직장을 얻고 독립한 자신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크리스티나는 왓츠앱에서 만난 프랑스인 남성과 사랑에 빠졌다고 고백한다. 이들은 장애인의 연애와 결혼, 출산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강하게 비판한다.

 

연출 과정은 쉽지 않았다. 햄릿의 복잡한 대본은 다운증후군 배우들에게 큰 도전이었다. 발화에 어려움을 겪는 배우들이 대사를 암기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올리베로스는 “한 배우가 무대 시작 전 해골 소품을 숨겨버린 적도 있었다. 이는 단지 동료에게 장난을 치고 싶었던 행동이었다”며 웃으며 에피소드를 전했다.

 

그러나 배우들은 비장애인 배우 못지않은 고된 리허설을 거쳐 무대를 성공적으로 완성했다. 2022년부터 시작된 이들의 여정은 뉴욕 링컨센터, 영국 바비칸 시어터 등 세계 37곳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공연 중 대사를 잊거나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있지만, 관객들은 배우들이 당부한 대로 기다린다. 그리고 연극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지난 25일 한국 공연을 마친 이들은 내달 호주 멜버른과 캐나다 토론토에서 공연을 계속할 예정이다.

 

배우 알바로 톨레도는 무대 위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든 자신의 꿈을 향해 자유롭게 결정을 내리고 도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 무대에 설 수 있어 정말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