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들면 손해” 15일간의 역대급 붉은 축제

다인종과 다문화의 용광로라고 불리는 국가를 꼽으라면 단연 말레이시아를 빼놓을 수 없다. 말레이계가 약 62%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만, 중국계 21%, 인도계 6% 등 다양한 민족이 어우러져 독특한 국가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다. 종교 지형 또한 다채롭다. 이슬람교를 국교로 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 도교, 기독교, 힌두교 등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은 전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광경이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말레이시아에서는 각 인종이 소중히 여기는 명절이나 축제가 곧 국가 전체의 중요한 행사로 대접받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성대하게 치러지는 축제가 바로 중국 설날이다. 단순히 중국계 사람들만의 명절을 넘어 말레이시아라는 국가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축제 중 하나로 완벽하게 자리 잡았다.

 

말레이시아 관광청에 따르면 중국 설날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에게 한 해 중 가장 의미 있는 시간이다. 이 시기 말레이시아 전역은 붉은 등불로 물들며, 단순한 휴일을 넘어 사회 전반에 뿌리내린 관용과 공존의 가치를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장이 펼쳐진다. 말레이시아 헌법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만큼, 도심 거리에서 모스크와 불교 사원, 힌두 사원, 성당이 나란히 자리한 모습은 이곳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말레이시아 설날의 가장 독특하고 따뜻한 풍경은 오픈 하우스 문화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자신의 집을 활짝 열어 가족과 친지는 물론 이웃 주민과 외국인 관광객까지 초대해 음식을 나누는 전통이다. 종교와 인종이라는 높은 벽을 허물고 모두가 명절의 기쁨을 공유하는 이 문화는 말레이시아 사회가 지닌 포용과 존중의 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중국계 인구 비중이 높은 페낭이나 쿠알라룸푸르의 차이나타운은 설 연휴부터 약 15일 동안 그야말로 축제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다. 거리 곳곳에서는 전통 악기 연주가 끊이지 않고, 화려한 의상을 갖춰 입은 행진단이 여행객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밤이 되면 쏟아지는 불꽃놀이와 함께 역동적인 사자춤과 용춤 공연이 펼쳐지는데, 이는 행운을 불러오고 악운을 쫓는다는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화려한 색감과 생동감 넘치는 움직임은 말레이시아 설날을 기억하게 하는 강렬한 시각적 요소가 된다.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배를 하고 앙파우라고 불리는 빨간 봉투에 세뱃돈을 넣어 주고받는 모습은 한국의 설 풍습과도 매우 닮아 있어 우리 여행객들에게 묘한 친숙함을 선사한다. 하지만 식탁 위로 눈을 돌리면 말레이시아만의 이색적인 풍습이 눈에 띈다. 바로 설날 대표 음식인 이상이다.

 

이상은 연어와 각종 채소, 소스를 버무려 먹는 일종의 회 샐러드다. 흥미로운 점은 먹는 방식에 있다. 가족과 친지들이 젓가락을 들고 식탁 주변에 둘러서서 재료를 공중으로 높이 들어 올리며 새해 복을 기원하는 로 헤이 의식을 치른다. 재료를 더 높이 던질수록 더 큰 복이 찾아온다는 믿음 때문에 식탁 주변은 금세 시끌벅적한 환호성으로 가득 찬다. 높이 솟구치는 음식 재료들과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말레이시아 설날에서만 볼 수 있는 진풍경이다.

 


말레이시아의 설날은 특정 민족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웃과 만다린 오렌지를 나누고 서로의 배경을 묻지 않은 채 식탁에 마주 앉는 화합의 장으로 기능한다. 설 전후로 이어지는 이 거대한 축제의 물결은 다문화 국가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는 표본과도 같다.

 

이 시기에 말레이시아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은 화려한 볼거리에 취하는 것을 넘어, 서로 다른 생각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가는지를 가슴 깊이 느낄 수 있다. 서로를 향한 따뜻한 환대 속에서 맞이하는 새해는 그 어떤 여행지에서도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기억을 남긴다.

 

다양성이 갈등의 씨앗이 아닌 풍요로운 문화의 자양분이 되는 곳, 말레이시아의 중국 설날은 단순한 명절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붉은 등불 아래서 모두가 친구가 되는 이 15일간의 기적은 지금 이 순간에도 말레이시아 곳곳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화려한 사자춤의 울림과 로 헤이를 외치는 사람들의 활기찬 목소리는 다문화 국가 말레이시아가 전 세계에 보내는 평화와 화합의 메시지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