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었던 미국마저…'대만 유사시' 발언에 외톨이 된 일본 총리

 대만 해협을 둘러싼 중국과 일본의 갈등이 격화되는 가운데,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의도적인 '거리두기'에 나서며 동북아 정세에 미묘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캐럴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11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중일 갈등에 대한 입장을 묻는 말에 어느 한쪽의 편을 들지 않는 원론적인 답변으로 일관했다. 레빗 대변인은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신임 총리와 훌륭한 관계를 갖고 있으며 일본은 위대한 동맹국"이라고 강조하면서도, 동시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도 좋은 실무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이는 미국에 이로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동맹국인 일본과 전략적 경쟁 관계인 중국 사이에서 철저히 등거리 외교를 펼치며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겠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를 명확히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이번 갈등의 발단은 지난달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의 폭탄 발언에서 시작됐다. 다카이치 총리는 "대만 유사시는 일본이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존립 위기 사태'에 해당할 수 있다"고 언급하며, 대만 문제에 일본이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는 중국은 즉각 격렬하게 반발했다. 중국 정부는 자국민에게 일본 여행 자제령을 내리고 일본 문화예술인의 중국 내 활동을 막는 등 '한일령(限日令)'으로 불리는 보복 조치에 착수하며 일본을 압박했다. 갈등은 경제·문화 영역을 넘어 군사적 긴장으로까지 번졌다. 지난 7일, 일본 측이 동중국해 공해상에서 중국 함재기가 자국 전투기를 향해 공격용 레이더를 조사했다고 항의하면서 양국 관계는 그야말로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상황이 이처럼 험악하게 치닫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가장 중요한 동맹인 미국은 이례적일 정도로 침묵을 지키며 적극적인 개입을 꺼리는 모양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최근 보도에서 "중일 갈등이 촉발된 이후 주일 미국대사가 입장을 표명한 것 외에 트럼프 행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지지 표명은 전무했다"고 지적하며 미국의 소극적인 태도를 꼬집었다. 심지어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과 통화한 직후 다카이치 총리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발언 수위를 조절하라'고 요구했다는 보도까지 내놓았다. 비록 일본 정부가 해당 보도 내용을 공식적으로 부인하기는 했지만, 이는 미국이 동맹인 일본을 지지하기는커녕 오히려 양국 갈등의 중재자, 혹은 방관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분석에 힘을 싣는 대목이다.

 

결국 백악관의 이번 공식 입장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 전략이 동맹 관계에도 예외 없이 적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 동맹의 안보 위협에 공동으로 대응하던 전통적인 동맹 관계의 문법에서 벗어나, 미국의 국익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먼저 따지겠다는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다. 이는 일본에게 미국의 '자동 개입'이나 '무조건적인 지지'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는 분명한 신호로 작용할 수 있다. 동맹의 딜레마에 빠진 일본의 외교적 고립이 심화되는 한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펼쳐지는 힘의 균형이 동북아 안보 지형을 어떻게 재편하게 될지 국제 사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