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 콜로세움부터 교도소 체험까지, 익산 인생샷 성지 투어

전북 익산은 마한과 백제의 유구한 역사를 품고 있는 고즈넉한 도시다. 하지만 최근 익산은 전통적인 모습 외에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이색적인 공간들로 다채로운 매력을 발산하며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있다. 겨울바람이 차가운 요즘, 익산의 숨겨진 보물을 찾아 떠나는 여정은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하다.

 

가장 먼저 발길이 닿는 곳은 익산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급부상한 황등면의 황등석산이다. 이곳에 도착하면 산이라기보다는 거대한 예술 작품 같은 절경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봉긋한 정상 대신 수직으로 깎인 직벽과 거대한 절개면이 펼쳐져 있어 산이라는 이름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이는 자연이 만든 풍경이 아니라 수십 년간 돌을 캐내며 땅속을 깎아 내려간 인간의 시간이 빚어낸 지형이다. 현재 지하 80m 아래까지 채석이 진행되었으며 앞으로 30m를 더 내려가면 채석장으로서의 수명을 다하고 새로운 관광 자원으로 완벽히 변신할 예정이다.

 

황등석산의 뿌리는 돌에 있다. 익산은 미륵산 줄기인 낭산 일대를 중심으로 질 좋은 화강암이 집중적으로 분포한 지역이다. 여기서 채굴된 황등석은 포천석, 거창석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화강암인 익산석으로 불리며 전국적인 사랑을 받았다. 입자가 고운 회백색 돌결이 특징인 이 돌은 철분 함량이 낮아 시간이 지나도 색이 변하지 않고 내구성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 덕분에 국보 제11호 미륵사지 석탑은 물론 청와대 영빈관과 국회의사당 같은 국가적 상징물의 건축 재료로 사용되었다.

 

최근에는 이곳에 황등석산 문화예술공원 제1전망대가 문을 열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전망대에 서면 축구장 9개가 들어갈 만한 광활한 공간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지하 깊숙이 파 내려간 채석장의 모습은 마치 고대 로마의 원형 극장을 거꾸로 뒤집어 놓은 것 같아 지하에 뒤집힌 콜로세움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수직으로 떨어지는 석벽의 웅장함은 보는 이로 하여금 경외감마저 느끼게 한다.

 

전망대 내부에는 뷰 맛집으로 소문난 카페 어스 언더 파크가 자리하고 있다. 통창 너머로 거친 채석장 풍경과 질서 정연한 기하학적 석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다이아몬드 와이어 톱이 만들어낸 정교한 절개면을 바라보면 거친 산업 현장이 하나의 거대한 설치 미술처럼 다가온다. 특히 일출이나 일몰 시간에는 회색빛 돌산이 붉게 타오르는 마법 같은 광경을 선사해 출사 명소로도 인기가 높다.

 

 

 

석산에서 조금만 이동하면 정겨운 황등역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가황 나훈아의 명곡 고향역의 실제 배경이 된 장소다. 1970년 임종수가 작사 및 작곡한 이 노래는 그가 중고등학생 시절 황등역에서 익산역까지 기차로 통학하며 보았던 철길 가의 코스모스를 모티브로 탄생했다. 역 앞에 세워진 노래비를 보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다 보면 그리운 고향의 정취가 물씬 느껴진다. 근처 황등농공단지에는 석제품 전시홍보관도 마련되어 있어 익산 석재 문화의 역사와 발달 과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겨울의 정취를 더 깊게 느끼고 싶다면 황등면 율촌리의 아가페 정원이 제격이다. 이곳은 500여 그루의 메타세쿼이아가 40m 높이의 거대한 성벽처럼 정원을 감싸고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1970년 아가페정양원의 부속 시설로 조성된 이곳은 전라북도 제4호 민간정원으로 등록된 뒤 시민들에게 무료로 개방되었다. 겨울나무들이 이루는 웅장한 성채 사이를 걷다 보면 마치 비밀의 숲에 들어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조금 더 이색적인 경험을 원한다면 성당면 와초리의 익산 교도소 세트장이 답이다. 옛 성당초등학교 남성분교 폐교 부지에 세워진 이곳은 실제 교도소를 완벽하게 재현한 공간이다. 높은 시멘트 담장과 철문, 감시탑 등이 삼엄한 분위기를 풍기지만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지면서 지금은 많은 여행객이 교도소 체험복을 입고 인증샷을 남기는 명소가 되었다.

 

여정의 마무리는 함라한옥마을이 적당하다. 이곳에는 이른바 함라 삼부자 집으로 불리는 고택들이 모여 있다. 가장 규모가 큰 김안균 가옥은 1920년대와 30년대에 걸쳐 건립된 상류 가옥으로, 전통 한옥 양식에 일본식 수법이 가미된 독특한 구조를 보여준다. 상량문에 대정 7년이라 기록된 조해영 가옥과 삼부자 집의 모델이 된 이배원 가옥까지,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면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지나온 익산의 세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익산은 화려한 도시의 풍경보다는 땅과 돌, 그리고 시간이 빚어낸 묵직한 매력을 지닌 도시다. 거친 채석장의 웅장함부터 코스모스 피던 고향역의 낭만, 그리고 고택의 단아함까지. 올겨울 익산으로 떠나는 여행은 일상의 지친 마음을 달래줄 소중한 보물 찾기가 될 것이다.